워낙 시리즈로 출판되는 책의 전집을 사들이는 걸 좋아하다 보니, 그리고 어쩌다 보니 (비록 영문학이기는 하지만) 문학을 전공했는지라 언젠가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 보는 것이 (비록 미세하기는 하나) 목표다. 그 목표가 생겨서 읽겠다는 열의보다는 전집을 사도 된다는 핑계가 생긴 것 같기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열정적으로 (언젠가 그 날이 오면) 어떤 문학전집을 살까 고민하게 되는데, 결국 두 가지 전집으로 추려졌다.
첫 번째, 을유세계문학전집
먼저 1959년 국내 최초로 세계문학전집을 출간한 출판사라는 전통이 마음에 들고, "번역된 작품 하나하나가 정본(定本)으로 인정받고 대우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라는 간행사도 마음에 든다. 그리고 학부 공부를 할 때 (때로 본문보다 많은 해설 때문에 나를 짜증 나게 했던) Norton Critical Edition처럼 그저 팔 책을 만든 것이 아니라 각 작품에 대한 애착과 전문성을 갖고 한 권 한 권 꾹꾹 눌러 써가며 출판한 듯한 묵직함이 느껴져서 마음에 든다. 판본도 양장본이라 (매우) 책꽂이에 들여놓고 싶게 만들고, 뭉크의 '절규' 느낌을 내는 심각한 표지들은 왠지 이 책들이 나를 좀 더 똑똑하고 교양있게 만들어 줄 것 같은, 그리고 언젠간 한 번쯤은 꼭 읽어야 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기에는 2018년 8월 현재 356권까지 나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보다는 아직 94권까지 나온 을유세계문학전집이 더 도전해볼 만 하다 (비록 2008년 간행 당시 "2020년까지 300권이 출간될 예정"이라는 계획은 판매 부진으로 무산되고 100권 완간을 목표로 바꿨지만).
두 번째로, 시공주니어 네버랜드 클래식
나이가 들면서 책은 가능하다면 원어/원문으로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생기고, (아직 생기지도 않은 아직은 머나먼 미래의) 내 아이들을 생각하면 '어릴 적 읽고 나면 처분해야 할 어린이/청소년용 문학책을 아까워서 어떻게 사지?'라는 걱정을 하곤 하는 나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온 시리즈다.
출판사 이름 앞에 "주니어"를 붙여서 왠지 집에 주니어가 없는 어른은 출판사 이름만 보고 발을 돌리게 만들지만, 알고 보면 원작을 완역한 진짜 책이다. 단지 "주니어"한 점이라면 선정된 작품들이 어린이를 위한 고전이라는 점이랄까? (그래서 이름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프랑켄슈타인 같은 작품은 없다). 하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는 어린이'화' 되어버린
죄와 벌을 읽기보단 원작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읽겠다!) 그리고 주니어한 작품 선택 덕에
톰 소여의 모험을 제외하면 을유세계문학전집과 겹치는 작품도 없기에 두 출판사가 짜기라도 한 듯 함께 소장하기에 매우 바람직하다. 게다가 판본도 양장이라 마음에 들고 비록 앞표지 디자인은 권마다 다르지만, 책 등 디자인은 같아서 책꽂이에 매우 꽂음직하다. 거기에 가볍지 않은 삽화들과 사진을 곁들인 작품 해설도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네버랜드 클래식은
비밀의 화원으로 처음 접하고 아직도 여러 페이지에 밑줄이 그어진 그 책이 내 책꽂이에 꽂혀있는데, 그 책 옆에 전집을 채워 넣을 생각을 하니 벌써 설렌다. 책꽂이에 꽂아두고 때때로 나를 동심으로 돌아가게 해줄 것 같은, 꼭 전부 갖고 싶은 시리즈다. 그래서 두 시리즈 중에 먼저 살 책들을 고르라면 나는, 네버랜드 클래식을 먼저 사겠다.